[천국 복음과 영생의 말씀] (2023.02.01.)
(새 번역 우리말성경), (마태복음13장), (읽고 외우고 믿습니다),
+++기독교의 신학과 새 번역 우리말 성경을 읽기 쉽고 이해하기 쉽게 연구하는 신학모임입니다. 기독교와 성경 천국 복음 그리스도 예수를 왜곡하는 이단들의 글과 동영상은 보고 읽는 사람의 마음과 정신을 혼미케하여 가정과 사회와 신앙과 공동체를 병들게하고 망하게합니다+++
+++ [주 기 도 문] +++
(마6: 9-13), (새 번역 우리말 성경), (읽고 외우고 믿습니다.)
O. 9. 그러므로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10.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11.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12.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13.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영원토록 아버지께 있사옵나이다. 아멘.)
+++ [사 도 신 경] +++
(우리의 신앙고백), (새 번역), (읽고 외우고 믿습니다.),
O,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 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려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재와 죄를 용서 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주제] [1] 네 가지 땅에 떨어진 씨의 비유(2).
[오늘의 본문] 새 번역 우리말성경(마13: 1-43)
둘째, 밭의 종류입니다.(4- 7절)
O.4. 그가 씨를 뿌리는데 어떤 씨는 길가에 떨어져 새들이 와서 모두 쪼아 먹었습니다. 5. 또 어떤 씨는 흙이 많지 않은 돌밭에 떨어져 흙이 얕아 싹이 곧 나왔으나 6. 해가 뜨자 그 싹은 시들어 버리고 뿌리가 없어서 말라 버렸습니다. 7. 또 다른 씨는 가시덤불에 떨어졌는데 가시덤불이 자라 무성해져 싹이 나는 것을 막아 버렸습니다.
앞서 해설에서 예수 자신은 “밭의 종류”에 따라 복음의 씨는 엄청난 결실을 맺을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본문 비유의 내용은 그러한 씨 뿌리는 방법에 대한 관심보다 씨가 뿌려지는 밭으로 비유되는 사람들의 마음에 관심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 “길가” 밭입니다.
O.(4절). 그가 씨를 뿌리는데 어떤 씨는 “길가에 떨어져 새들이 와서 모두 쪼아 먹어버렸습니다.”
여기서 “길가(파라 텐 호돈)”란, “길가를 따라” 라는 말입니다.
이는 밭고랑 사이를 따라 만들어진 길을 가리키는데 이 길은 뭇사람들의 발길에 의해서 단단 해지고 반질반질하게 다져진 것입니다.
본문에서는 “마음의 문을 굳게 걸어 잠근 청중”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본 비유에서 ‘길가“의 결정적 특징은 마음이 굳어져서 새로운 씨가 자신의 내부에 뿌려질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거부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결국 인간의 영혼이 복음으로 대표되는 새 진리에 대하여 아에 처음부터 철저히 배격하고, 거부하는 것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이유를 다음 두 가지 경우로 나누어 살펴보고 있습니다.
1. 의식적 원인입니다.
이는 자기 자신의 경험이나 학식만을 최고의 것으로 생각을 하고 그것만을 고집하는 교만과 독선을 말하는 것입니다.(현시대의 목사들의 성격)
2, 무의식적 원인입니다.
이는 이 땅에서의 삶이나 목숨보다는 영생의 문제라고 하는 복음의 중대성과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여 아 에 처음부터 복음에 대해 관심을 두지 않으려는 경솔한 무지와 부주의 태만에 의한 것입니다.
O.(4절 후), “새들이 와서 모두 조아먹어버렸다.”..
“새” 팔레스틴에는 약 300여 종(種) 이상의 새가 있습니다.
그중에서 제일 흔한 새가 바로 부정한 새로 분류된 이 “참새 매”입니다.
부정한 새로 분류된 이 새는 유대 땅 어느 곳에서나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이 비유를 말씀하시었을 때는 특별히 이 새를 염두해 두고 말씀 하신 것은 아닙니다. 새에 의해 상징되는 악한 자 즉 사탄은 공중의 권세를 잡고 있으면서 복음의 씨앗을 그 자신의 내부로 받아들이지 않고 방치 하고 있거나 나중 일로 미루어 지체하고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다시는 진리를 경험할 가능성을 갖지 못하게 하는 자들입니다.
인간이 받아들이지 않은 복음의 씨앗은 그대로 방치되는 것이 아닙니다.
악한 자들에 의해 신속히 재거 된 다는 사실을 강하게 암시하고 있습니다. “길가 밭과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은 복음의 씨앗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거부합니다. 그것은 결과적으로 “선과 악”, “하나님과 사탄”, “천국과 멸망”의 길이 판가름 나는 결정적인 것입니다.”
복음의 반대 세력은 지금도 기회만 있으면 거부된 씨앗을 빼앗아 가기위해 혈안이 된 사탄들입니다. 이들은 지금도 적극적으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이들을 향하여 이와 같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O.(벧전5: 8, 9). 8. 정신을 차리고 깨어 있으십시오. 여러분의 원수마귀는 우는 사자처럼 두루 다니며 삼킬사람을 찾습니다. 9. 믿음 안에 굳게 서서 마귀를 대적하십시오. 여러분이 알다시피 여러분의 형제들도 세상에서 같은 고난을 겪고 있습니다.
2), (5절) “흙이 많지 않는 돌밭”에 떨어져.”
O. 5. 또 어떤 씨는 흙이 많지 않은 돌밭에 떨어져 흙이 얕아 싹이 곧 나왔으나 6. 해가 뜨자 그 싹은 시들어 버리고 뿌리가 없어서 말라 버렸다.
1, “흙이 많지 않는 돌밭”
돌밭은 팔레스틴에서는 매우 흔한 지형입니다.
석회석 지층 위에 얕은 지표가 형성되어 있어서 자연히 바위의 온기에 의해 뿌리가 쉽게 나오지만 흙이 깊지 않아서 뿌리가 계속 성장할 수 없는 곳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씨가 뿌리어진 “길가(4절)”와 같은 사람들은 진리를 전혀 인식하거나 파악할 수 없는 자들이라고 합니다. “돌밭(5절)”의 경우와 같은 사람들은 진리를 단순하고도 피상적으로 이해하는 자들을 대표하는 말입니다.
흙이 얕음은 곧 복음의 진리를 받아들이는 신앙의 인격의 천박성 또는 경박성을 매우 효과적으로 형상화 시켜 주는 표현입니다.
이런 자들의 특징은 그 행동은 빠르나 지속적이지 못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특히 물질문명과 기계의 발달로 극도의 속도와 거대한 분량 많을 추구함으로써 대부분 인간의 심성이 표피화 되어가며 또한 기계화된 현대 사회에서는 돌밭 유형의 사람들을 더욱 빈번하게 만나고 발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복음의 진리”를 성장시키기 위한 영적 토양이 부족한 상태에서 어떤 선한 목적을 추구한다 해도 선한 열매를 거둘 수 없을 것입니다. 결론적 관점에서 본다면 표피화된 인간 심성은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2, “6. 해가 뜨자 그 싹은 시들어 버리고 뿌리가 없어서 말라 버렸다.”
식물은 뿌리에서 올라오는 습기와 영양분도 필요로 합니다.
또한, 태양열도 필요한 것입니다. 태양열은 탄소동화작용 등을 통하여 식물의 성장에 결정적 원동력을 제공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편 여기서 흙이 씨로 비유된 복음을 받아들이는 영혼의 상태를 뿌리가 씨(복음) 자체에서 나오는 생장력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여기서 해는 그 복음의 씨가 계속 자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각종 연단과 훈육을 가리킨다고 하겠습니다. 즉 씨 뿌리는 행위가 단회적인 반면 여기 해는 계속적인 에너지의 공급행위입니다, 즉 일반적 신앙생활을 통한 신앙훈련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해가 돋은 후에는 순간적 감격이 끝나고 이제 신앙인이 되어 일상적 신앙생활이 시작된 후라는 뜻으로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이를 7절의 가시와 비교하자면 둘 다 땅위에서 연단을 준다는 점에서는 같으나 해가 응당 치려야 할 운명을 가리킨다면 가시는 제 욕심 염려에 의한 불필요한 시련을 가리킨다고 보겠습니다.
“밭”은 곳 인간의 영혼 상태의 상징입니다.
“얕은 돌밭”은 결국 껍데기는 부드럽지만 그 속은 아직도 깨어지지 않은 완악한 상태의 심성을 지닌 사람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즉 겉마음은 경박한 정도는 아니지만 그 속마음은 성령에 의하여 부서지지 않고 자기 아집과 주장으로 가득찬 상태의 사람을 가리킨 것입니다. 이런 밭으로는 복음의 뿌리가 내려지지 않는 것입니다.
일관성과 성실성 그리고 끈기가 요구되는 신앙생활이 시작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시련이 봉착하게 되면 그 복음의 씨는 말라버리는 것입니다. 이런 자에게는 영적 소망을 기대할 수가 없습니다.
3), “가시떨기 위에 떨어지매(7절)”.
O.7. 또 다른 씨는 가시덤불에 떨어졌는데 가시덤불이 자라 무성해져 싹이 나는 것을
1, “가시떨기” 를 가리키는 헬라어(아칸다)는 “열매가 없어서 쓸모가 없는 것”을 가리키는 말에서 유래한 것으로써 기후가 건조한 팔레스틴에서는 거의 사계절에 다 볼 수 있습니다. 그 종류도 약 200여 가지가 된다고 합니다.
성경에서는 가시는 주로 “악(惡)을 행하는 자(삼상23: 6; 미7: 4),”
“이스라엘의 적(민33: 55; 수23: 13; 겔28: 24)”, “저주(창3: 18)”, “황폐함(사9: 18)”등으로 상징이 되고 있습니다.
본문에서의 “가시 떨기”는 천국 복음에 대한 신앙적 장애 요소로서 복음의 씨의 기운을 꺾어버리게 하는 모든 것들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가시떨기 밭은 가시가 자랄 수 있을 정도의 지력이 감춰진 곳이지만 생장력이 강한 가시나무 외에 다른 채소나 곡식은 함께 자랄 수 없는 거친 땅의 밭을 말하는 것입니다.
팔레스틴 땅에서는 개간된 밭 옆에 흔한 가시떨기가 자라는데 이곳에 밀이나 보리씨가 떨어져 같이 자라는 수가 있다고 합니다.
이때 곡식 낟알의 푸른 껍질까지는 생기지만 내용물은 전혀 없다고 합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주를 알고 믿은 지 상당히 오래되었으나 “의(義)와 사랑”의 열매를 맺지 못하는 성도들의 대부분은 이 세 번째 부류 “가시떨기”에 해당한다고 하겠습니다.
2, “기운을 막았고...”
헬라어의 문자적 의미로는(숨을 막아 질식 시키는 것) 을 말하는 것입니다.
한편 영적인 의미로는 이 “숨” 또는 “기운” 은 (프뉴마)를 번역한 말로 “성령”의 의미를 갖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가시떨기가 “기운을 막았다” 함은 믿는 자들이 성령의 도우심으로 이루어 나가는 모든 영적생활을 훼방하거나 혼돈시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길가 밭”과 “돌밭”의 경우는 주로 밭 내부가 문제이었으나 여기 “가시밭”은 밭 외부가 문제임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즉 앞의 경우들은 마음 밭이 아예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는 경우이지만, 이 경우는 마음 밭 자체는 쓸만 한대 그 마음 밭에 영적 성장에 장애가 될 만한 부정적 씨앗이 더 많은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열매를 맺는 좋은 밭이 되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마음 밭 내부도 좋아야 하지만, 외적으로 각종 신앙적 장애를 극복해 나갈 수 있는 기운찬 영적 생명력과 진취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4), ‘좋은 땅.“..
O.8. 그러나 어떤 씨는 좋은 땅에 떨어져 100배, 60배, 30배 열매 맺었다. 9. 귀 있는사람은 들으라.”
1, “좋은”의 뜻으로 사용된 “칼로스”라는 말은 자연의 아름다움과 도덕적으로 선한 상태 모두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좋은 땅” 이란 땅이 기름지고 수분이 충분 할 뿐만 아니라 햇볕이 잘 드는 곳이 위치하며 적절한 지력이 보존되어 있는 것입니다. 잡초들과 같은 씨앗의 성장에 불필요한 것들이 미리 제거된 순수한 땅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는 결국 이 비유의 원래의미와 연관시켜 생각해 본다면 진리의 복음을 받아들이고 영혼의 심지가 깊고 성실한 자입니다. 신앙적 줏대가 있고 진리에 대해 순박한 자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2, O.“혹 백배, 혹 육십 배, 혹 삼십 배...”
좋은 땅에 뿌려진 씨앗의 놀라운 수확량은 3/4의 상실, 즉 길가, 돌밭, 가시떨기위에 떨어진 씨앗으로 인해서 생겨난 모든 손실을 충분히 보상하고서도 남음이 있는 것입니다.
한편 결실의 차이에 대해서 퍼센트(percent) 는 다음과 같이 설명을 하였습니다. “삼십 배”는 가장 작은 결실을 나타내려고 한 것입니다. “육십 배”는 중간 정도의 결실입니다, “백배”라고 하는 것은 한 개의 곡식 낟알이 맺을 수 있는 최고의 결실을 나타내기 위한 예로 사용된 숫자입니다.
모든 결실이 항상 30배, 60배, 100배의 숫자로 거두어지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경우에 따라 200 혹은 300배까지도 결실을 맺을 수 있습니다.
어찌 되었든지 이는 결실을 맺지 못하는 데에 정도의 차이가 있었듯이 결실을 맺는데 에도 그 정도의 차이가 있음을 말하여주는 것입니다.
3, O. “결실을 하였느니라.”
(에디두 카르폰)헬라어 원문은 결실이 어떤 한계점에 도달할 만큼 겨우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생명력 넘치게 결실되고 있음을 나타내어 보이는 것입니다.
한편 여기서 결실은?.
가, 내적으로는 복음의 씨앗을 받은 각 성도의 영적 진보를,
나, 외적으로는 구속사 전개에 따른 천국 시민의 수적증거를, 동시에 가리킬 수가 있는 것입니다.
4, O.9.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
성경의 여러 내용에서 “귀”는 복종하는 것과 관련되어 자주 등장하고 있습니다. 귀는 이해력과 아울러 순종하려는 마음의 자세를 가리키는 말로 자주 쓰였던 것입니다. 이 처럼 추상적 개념을 눈에 보이는 구체적 사물로 대치시켜 표현하는 것은 특히 히브리인이 즐겨 쓰던 표현법입니다.
예레미야에 의하면 사람들이 예언자들을 통해서 전해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듣지 못하는 이유는 그 귀가 할례를 받지 못함이라고 하였습니다.
따라서 그 말씀을 욕으로 여겨서 즐겨듣지 않는다고 예레미야는 이와 같이 예언을 하였던 것입니다. 이러한 경우에 그들은 영적인 귀머거리인 샘인 것입니다.
O.(렘6: 8-10). 8. 예루살렘아, 경고를 받아들이라.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를 떠나고 너희 땅을 아무도 살지 않는황폐한 땅으로 만들 것이다.” 9. 만군의여호와께서 이렇게말씀하셨다. “그들이이스라엘의 남은사람들을 포도나무처럼 샅샅이 찾아낼 것이다. 너는 포도를 따는 사람이 포도나무 가지마다 다시 살펴보는 것처럼 남은 사람들은 구하여라.” 10. 내가 누구에게 말하고 경고해 듣게 하겠는가? 그들의 귀가 막혀서 들을 수 없다.여호와의말씀이 그들에게는책망이니 그들이 여호와의 말씀을 기뻐하지 않는다.
본문에서는 “귀 있는 자” 란 하나님의 말씀을 재대로 들을 수 있는 분별력이 있는 자입니다. 그 말씀을 순종하려고 하는 마음을 준비하는 자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한편 이는 비유 자체가 갖는 이중목적, 즉 순종하는 자에게는 더욱 뜻을 명료하게 순종할 의사가 없는 자에게는 오히려 참 진의를 숨기기 위한 목적과 일맥상통하는 말입니다.
+++ 오늘의 기도 +++ (읽고 외우고 믿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보혈과 부활을 찬양합니다. 오늘도 성령으로 충만케 하셔서 그리스도 예수의 제자로 삼으시고 온세상 땅끝까지 천국 복음을 전파하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은혜와 그리스도의 사랑과 성령으로 충만케 하신 그리스도 예수의 이름으로 축복하고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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