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설교

[주제] [1] 메시야에 대한 반응과 애급으로 피난 (2).

worldkor 2022. 10. 17. 14:58

[천국 복음과 영생의 말씀] (10월17일)
+++기독교의 복음 신학과 표준 새 번역 우리말성경을 이해하기 쉽게 연구하는 신학모임입니다. 기독교와 성경과 그리스도 예수를 왜곡하는 이단들의 글과 동영상은 보고 읽는 사람의 마음과 정신을 혼미케하여 병들게하고 망하게 하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참된 제자가 되는 길]
[예수의 가르치심과 마태복음2장]

[주제] [1] 메시야에 대한 반응과 애급으로 피난 (2).
[본문] 표준 새 번역 우리말성경(마2: 1-18)

(4), 동방박사의 세 가지 예물
고대 세계에서 한 나라의 최고 통치권자 및 고귀한 사람을 만나거나 그에게 충성을 다짐할 때에 특별한 예물을 바치는 것은 상식적입니다. 박사들이 바친 예물은 그보다 더욱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① 황금(黃金, gold)은 동서고금을 통해 최고 귀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불변하는 성질의 금속으로써 흔히 부(富)를 상징하며 왕께 드리는 예물로 간주되었습니다. 이는 세상 만물을 소유하실 정도로 부한자입니다. 절대 권위를 가지신 왕으로서 예수를 인정하는 표시였던 것입니다. 

② 유향(乳香, frank-incense)은 아라비아 지방의 관목에서 채취한 송진(松津)입니다. 향기로운 송진으로서 성전 제사나 헌물로 자주 사용되는 것입니다. 
이는 예수의 제사장적 권위(하나님과 인간의 중제자)와 신성(神性)을 인정하는 예물(禮物)이었습니다. 

③ 몰약(沒藥, myrrh)은 시체를 염(殮)하거나 방부제로 사용되는 것이었습니다. 매우 귀한 자의 시체에만 바를 정도로 고가품이었습니다. 
예수의 수난과 죽음을 미리 예비하는 예물이었습니다. 
예수는 자신의 생명과 죽음을 포함한 그 모든 것을 인류 구원을 위해 다 내놓으셨던 것입니다.

박사들은 가장 위대하신 분께 가장 고귀한 예물을 드린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드린 예물은 그분이 최고의 왕이시오, 최상의 대제사장이었습니다. 
유일한 구세주가 되시는 궁극적인 경배의 대상임을 확증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사회적으로 상당한 위치에 올라있었습니다. 그에 비해 그들이 경배한 예수는 현실적으로 너무 초라했습니다(사53: 2). 
O.(사53; 2). 그는 주 앞에서 마치 새싹과 같이, 메마른 땅을 뚫고 나온 싹과 같이 자라났다. 그는 수려한 풍채도 없고 화려한 위엄도 없으니 우리가 보기에 볼품이 없었다.

그들은 그 같은 인습과 자만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이 세상에 참된 왕으로 오신 예수께 온 정성을 다해 경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가 믿고 절대 신앙을 하는 그분께 무엇을 드려 경배할 것인가?.
O.(롬12: 1). 그러므로 형제들이여, 내가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여러분에게 권합니다. 여러분의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십시오. 이것이 여러분이 드릴 영적 예배입니다.

(5), 애급으로 피신한 예수
유대인의 왕으로 이 땅에 내려오신 예수는 탄생 초부터 유대땅에 머물지 못하고 이방 땅 애급으로 피신하는 비운을 맞았습니다. 이를 사도 요한은(요1: 11)에서 이렇게 말씀을 하시었습니다.
O.(요1: 11, 12), 그분이 자기 땅에 오셨지만 그분의 백성들이 그분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12. 그러나 그분을 영접한 사람들, 곧 그분의 이름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될 권세를 주셨습니다. 

이 같은 도피는 표면적으로 헤롯의 잔인한 유아학살 때문이었습니다. 
그 이면에는 분명 모세와 호세아의 입술을빌어 이미 예언하신 바를 마침내 이루시고자 하셨던 하나님의 강한 손길에 의해서였음을(출4: 22, 23; 호11: 1)에서는 이와같이 예언의 말씀을 하시었던 것입니다.
O.(출4: 22, 23), 22. 그러면 너는 바로에게 말하여라.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내 장자다. 23. 내 아들을 보내 그가 나를 경배하게 하라고 내가 네게 말했지만 너는 그를 보내기를 거부했다. 그러므로 내가 네 장자를 죽일 것이다.

본서의 저자인 마태는 이스라엘 민족이 애급의 학대에서 해방되어 나올 것이라는 구약의 예언들을 예수와 그 가족에게 적용시켜, 예수께서 필연적으로 애급으로의 도피를 할 수밖에 없었던 당위성과 또한 결국에는 유대 땅으로의 귀환이 있을 것을 믿고 바라보았던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이스라엘의 역사는 이스라엘의 왕이신 예수 생애의 모형적 역할을 한 것입니다. 이는 구속사의 최고 정점인 예수의 개인적 삶은 신, 구약을 통틀어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 역사와 그 생애를 전적으로 포함하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실로 예수는 민족적 해방인 모세의 출 애급 사건의 역사적 차원을 넘어 전 인류의 영원한 구원을 위해 애급에 피신하셨으며, 또한 제2의 출애급을 하셨던 것입니다. 

[예수의 유년 시절.]
한 인물의 유년 시절은 그의 성격과 생애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입니다. 
따라서 전기의 연구가들은 연구대상 인물의 유년기의 환경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리기 마랸입니다. 그러나 복음서 기자들은 예수의 어린 시절에 대해서는 거의 침묵을 하고 있습니다. 이는 메시아의 공생애를 부각시키기 위한 복음서 기자들의 한결같은 의도를 반영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공생애를 시작시기 전까지 예수는 일개 목수의 아들로서 평범한 삶을 살았던 것으로 보이는데 이러한 평범한 삶은 일거수일투족마다 신령한 의미로 충실하였던 예수의 공생애를 기록하였던 것입니다. 

앞서 말한 대로 사복음서는 모두 예수의 나사렛 귀향 이후 공생애 개시까지의 30년 정도의 기간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곧 예수 유년 및 청년 시절에 대하여 침묵을 하고 있습니다. 다만 본문은 예수가 귀향 후 나사렛에서 살았는데 그것은 이미 구약에 예언되었던 사실이었다는 시사만 담고 있습니다. 이 짧은 기사에서 우리는 다음의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① 예수는 이 세상의 정치적 혁명을 통한 왕권을 획득하기 위해 오신 뛰어난 순간적인 한 인간이 아닙니다. 우리의 구속자로서 영원한 왕이 되기 위해 오신 한 유일한 인간이셨습니다. 세상의 권력자들은 이 점을 오해하고 예수를 박해하였던 것입니다. 이는 그들의 오해이기도 하였지만 동시에 영원한 왕으로서의 예수의 도덕적 거룩함이 그들 독재자들의 간악한 품성과 비교되어 그들로 하여금 심한 거부감을 갖게 하였습니다. 실재로 2,000년 교회사를 보더러도 악한 독재자들은 교회의 참 진리를 언제나 싫어하게끔 되어있었습니다. 

② 예수가 대략 33년을 살았다고 할 때 나사렛에서의 30년은 예수 생애의 11 /10에 해당됩니다. 한편 나사렛은 구약에서는 단 한 번도 언급되지 않는 한적한 장소이었습니다. 예수 시대에도 나사렛이 포함된 갈릴리 땅은 멸시와 천대의 땅의 대상이였습니다. 사도 요한은(요1: 46)에서 이렇게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O.(요1: 46). 나다나엘이 이르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빌립이 이르되 와서 보라 하니라.

이러한 땅에서 고요히 자신을 낮추시며 자신의 공생애를 준비하시던 예수의 겸손한 자세를 기억해야 하는 것입니다. 모세는 120년의 생애 중에서 바로의 궁에서 40년, 미디안 광야에서 40년을 지도자가 되기 위하여 준비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자기도 모르게 된 일이었고 그런 오랜 준비 후에도 그는 지도자로서 많은 혈기와 실수를 범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는 제2위 하나님으로서의 자아의식을 분명히 가지심으로 이토록 오래 자신을 낮추셨던 것입니다.

『헤롯의 세 아들들에게 분활된 영토』   
B.C. 4년 해롯 대왕이 죽자 로마 황제「아우구스도」는 팔레스틴을 효율적으로 통치하기 위해 그곳을 4등분하여 그 절반인 유대, 이두메(에돔), 사마리아 지역을「아켈라오」(Herod Archelaus, (B.C. 4- A.D. 6년)에게 위임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갈릴리, 베레아 지역을「안티바스」(Herod Antipas, (B.C. 4- A.D. 37년)에게 위임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갈릴리동북부의 바다네아, 트라코니터스, 어라니티스 지역을「빌립」(Herod Philip, (B.C. 4- A.D. 34년)에게 각각 위임하였던 것입니다. 

한편 이중 아켈라오는 학정(虐政)을 일삼다가(A.D. 6년)에 통치권을 잃고 추방  당하였으며 그의 영토는 로마 총독의 관할 하에 부속(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안티바스는 (A.D. 34년)까지 최장기 통치를 할 수 있었습니다, 
빌립은 그의 죽을 때까지(A.D. 34년) 그의 영토를 관할 하는 탁월한 정치력을 발휘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을 뒤이은 대표적 인물이 둘 있었습니다. 
그중 한 사람이 헤롯 대왕의 아들이었던 아리스토불루스(Aritobulus)의 아들 헤롯 아그립바 1세(Herod  Agrippa 1)이었습니다. 그는 로마의 디벨리오 황제에 의해 실각이 되었습니다. 그랫으나 뒤늦게 글라우디오 황제 때에 복권되어 유대의 분봉왕에 취임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대 교회사에 길이 기억될 잔인한 박해자로서(행12: 1-23), 짧은 통치 기간(A.D. 41- 44년)을 마감하였습니다
(행12: 20-23), 20. 당시 헤롯은 두로와 시돈 사람들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무리를 지어 헤롯에게 와서 왕의 시종 블라스도를 설득해 화친을 요청했습니다. 이것은 자기들이 헤롯 왕의 영토에서 나는 양식을 공급받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21. 약속한 날에 헤롯은 왕의 의복을 갖춰 입고 왕좌에 앉아 사람들에게 연설을 했습니다. 22. 그러자 사람들은 “이것은 신의 음성이지 사람의 음성이 아니다”라고 외쳤습니다. 23. 그런데 헤롯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았기 때문에 주의 천사가 즉시 헤롯을 내리쳐서 그는 벌레에 먹혀 죽고 말았습니다.

이 외에도 헤롯 아그립바 1세의 아들(A.D. 53-70년)까지 유대를 평화롭게 통치한 헤롯 아그립바 2세를 들 수 있습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와 보혈과 부활을 찬양합니다. 우리를 성령 충만케 하셔서 그리스도 예수의 제자로 삼으시고 천국 복음을 온 세상 땅끝까지 전파하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입은 사람들에게 그리스도 예수의 은혜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성령이 충만하게 하시옵기를 그리스도 예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