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2], 신약 시대의 요단강(3: 1-17)
[천국 복음과 영생의 말씀] (10월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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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의 참된 제자가 되는 길]
[예수의 가르치심과 마태복음3장]
[주제] [2], 신약 시대의 요단강(3: 1-17)
[본문] 표준 새번역 우리말성경(3: 1-17)
요단강(Jodan Rivel) 팔레스타인에서 유일하게 큰 강입니다.
요단강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의 사역 초기에도 그러했던 것이었습니다. “급히 흘러내려 가는 강”이라고 하며 “물의 심판자,” 라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요단강은 북쪽 헤브론 산에서 발원하여 갈릴리 바다를 통과한 후 계속 남쪽으로 흘러내려가 사해에서 끝남으로써 팔레스틴에서 가장 길고 중요한 강입니다. 이 강의 직선거리는 약270Km이나 굴곡이 심한 관계로 실제 약400Km나 된다. 강의 넓이는 약24-50m 사이의 좁은 폭을 이루고 있고 수심은 1.5-4m 안팎으로서 겨울 우기(12-3월)에는 이보다 깊어진다. 그런데 한 가지 특이한 것은 이 강의 마지막 하류에 해당하는 사해는 해수면보다 약392m 낮기 때문에 요단강에서 유입되는 물은 더 이상 다른 곳으로 유출되지 않는다. 발원지 헤브론산(해발518m)과의 편차가 많이 나기 때문에 자연히 그 중간에 위치한 요단강 본류는 경사가 급하고 물결이 셀 수밖에 없습니다.
한편 예수께서 공생애 사역을 이곳에서부터 시작하고 이곳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보듯이 세례 요한이 세례를 베풀던 장소이자(6절) 예수의 수세 현장이며, 성령이 비둘기같이 강림하신 곳이기도 하는 것입니다(13-17절; 막1: 9-11; 눅3: 21).
O.(13-17절). 13. 그때 예수께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려고 갈릴리에서 요단강으로 오셨습니다. 14. 그러나 요한은 이를 말리면서 예수께 말했습니다. “제가 오히려 선생님께 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제게 오시다니요!” 15. 예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지금은 그렇게 하도록 하여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해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옳다.” 그러자 요한은 그대로 따랐습니다. 16.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물속에서 올라오셨습니다. 그때 예수께서는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영이 비둘기처럼 자신에게 내려오는 것을 보셨습니다. 17. 그리고 하늘에서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다. 내가 그를 매우 기뻐한다.”
현재 여리고 밖 요단강변 에는 세례가 베풀어진 곳으로 추정되는 산당이 일곱 개 이상이 있습니다. 세례 요한과 쿰란 공동체와의 관계가 긴밀했다고 합니다. 그 후 요한은 벳산 남쪽 수 Km지점인 살렘 근처의 에논에서 세례를 베풀었던 것입니다(요3: 23). 이와 더불어 예수께서는 요단강 접경을 중심으로 활발한 선교사역을 진행하셨던 것입니다.
나사렛과 갈릴리 주민들이 사마리아 통과를 통상적으로 기피한 점으로 보아 예수께서도 나사렛에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도중에 요단강을 수차례 건너셨을 것으로 추측이 됩니다. 예수께서 치유와 복음증거를 하신 현장이 바로 이곳 요단강이라는 기록이 여러 번 나오고 있습니다(마20: 29-34; 막10: 46-52; 눅18: 35-43),
O.(29-30절) 29. 그들이 여리고를 떠날 때에 큰 무리가 예수를 따랐습니다. 30. 눈먼 사람 두 명이 길가에 앉아 있다가 예수께서 지나가신다는 말을 듣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다윗의 자손이신 주님, 저희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31. 사람들이 그들을 꾸짖으며 조용히 하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더욱 큰 소리를 질렀습니다. “다윗의 자손이신 주님,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32. 예수께서 걸음을 멈추고 그들을 불러 물으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무엇을 해 주기 원하느냐?” 33. 그들이 대답했습니다. “주님, 우리 눈을 뜨게 해 주십시오.” 34. 예수께서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그들의 눈에 손을 대셨습니다. 그러자 그들이 곧 다시 보게 됐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를 따랐습니다.
삭개오를 만난 곳도 이곳 근방이요(눅19: 1), 또한 예수와 제자들이 요단강 수원 근처인 가이사랴 빌립보에 있을 때 그 유명한 베드로의 신앙고백이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마16: 13; 막8: 27).
O.(마16: 13- 16). 13. 예수께서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고 하느냐?” 14. 그들이 대답했습니다. “세례자 요한이라고도 하고 엘리야라고도 하고 예레미야나 예언자 중 한 분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15.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예수께서 물으셨습니다. 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했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이시며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한편 요단강은 마치 사람의 일생을 보여주는 한 폭의 그림같이 묘사되고 있습니다. 어리고 작으며 신선한 요단강의 수원은 헤르몬산 밑에서 즐겁게 장난치며 노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조금 아래쪽에 위치한 갈릴리 바다에서 성숙하며 힘을 얻어 완숙해는 것입니다. 그런 후 본격적인 요단강의 힘찬 활동이 오래 지속되다가 마침내 사해로 들어가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요단강은 고대의 약속의 땅을 구분하는 경계선이었음으로 금생과 내생의 울타리를 상징한 것입니다. 이런 사실에서 종종 찬송가 가사에는 요단강이 성도의 죽음과 삶을 갈라놓은 운명의 분기점으로 언급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의 등장과 예수의 금식 기도등의 앞뒤 사건과 어울려 그 차지하는 위치와 배경에 대해서는 예수 공생애를 준비하는 마당에 왜 이런 세례의식을 거행하였는가와, 또 하늘에서 들려온 음성에 담긴 의미는 무엇인가?. 하는 본사건 자체의 세부적 사항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요한의 세례는 분명히 인간 개인으로는 회개 세례입니다.
구속사 적으로는 성령세례의 예표에 불과한 물세례입니다.
죄가 없으신 예수는 회개의 세례가 필요 없는 것입니다.
성령과 한 몸이신 예수에게는 물세례는 필요가 없습니다.
오늘 성경 본문에는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의 해석이 교회사적으로 타당한 것으로 간주 됩니다.
① 예수께서는 할례나 기타 모든 구약의 율법을 무시하지 않의셨습니다.
준수함으로서 자신으로부터 시작된 신약 복음이 율법의 폐기와 단적이 아니라 연속과 완성이심을 보이셨던 것입니다.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요, 신약의 선구자인 세례 요한이 본격적으로 개시한 세례의식도 직접 행하심으로 신, 구약 교회를 연결시키는 동시에 모든 성도들에게 교회의 바른 전통과 의식을 존중할 것을 모범적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② 예수는 인간이 아니셨지만 인간을 구하시기 위하여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습니다. 죽을 분이 아니셨지만 스스로 죽어주셨던 것입니다.
우리의 대속자 예수는 인간의 모습으로 오셔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다 행하셨습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예수는 죄인은 아니었지만, 죄인들을 위해 회개의 세례도 몸소 실천해 보이셨습니다. 자신을 죄인과 동일시하신다는 측면에서 세례를 행해 주셨던 것입니다.
③ 우리를 위한 대속자로서 오신 예수의 대신 죽으심의 효력이 우리 같은 죄인인 각 개인에게 미칠 수 있게 해주는 원리가 대표와 연합의 원리입니다.
예수는 모든 인간의 대표로서 오셨는데 이 대표와 연합함으로 하나님 앞에서 본질적으로 죄인인 우리도 법적으로 예수의 죄 없으신 신분과 같은 신분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은 바로 “씻음과 연합”을 그 골자로 하는 세례의식, 정확히는 성령세례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는 여기서 그 성령세례의 예표요, 외적 상징인 물세례를 직접 행하심으로서 성도와 예수의 신비적 연합의 한 주체로서 당신도 준비하셨음을 상징적 의미로 보여주셨던 것입니다. “상징적 의미”라고 제한적 관점을 강조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예수는 세례(성령세례이건 물세례이건)를 받아야만 연합의 한 주체로서 준비 될 수 있는 분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초대 교회의 유명한 이단자들인 영지주의자(Gnostic)들은 예수가 여기서 물세례와 성령세례를 받았기 때문에 특별한 선지자가 되었고 훗날 십자가상에서 운명하는 바로 그 순간 성령이 떠나갔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잘못된 것입니다. 예수는 다만 요한의 물세례에 직접 동참해 주심으로서 물세례의 목적 그대로 씻음과 연합을 상징하고자 하셨습니다.
예수의 세례의식의 결과는 삼위일체의 회동에 의한 하늘의 예수 메시아직 승인이었습니다. 이는 예수의 공생애 사역에 대한 하늘의 사전 승인으로서 시기적 측면에서 매우 중대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① 구속사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공동 사역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성부께서 주관하시고 인정하시며 성자께서 수행하시고 성령께서 연락 교통하며 감화하시는 것입니다.
② 하늘에서 소리가 있은 것은, 시내 산에서 “모세가 율법을 받던 때(출19, 20장)”와 그 “율법의 완성자이신 예수 시대(마17: 5)”를 긴밀하게 묶어 놓은 하늘의 초자연적 계시입니다. 즉 “율법과 복음” 수여 때에 하늘에서 동일한 “승인의 음성”이 들렸던 것은 “율법과 복음”이 “한 하늘의 뜻”으로서 불가분리의 관계에 있는 것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3] 예수를 중심으로 한 삼위와 구속사 전개>
삼위 하나님은 각각 성부, 성자, 성령 순으로 주도적 사역을 행하였습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직접성과 주도성의 문제이지 “삼위의 시대별 분리”를 말한 것이 아닙니다. 구약 시대에도 성령과 성자는 간접 활동을 하셨습니다. 지금 오순절 이후에도 성부나 성자는 구속사를 섭리, 전개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여기서 현대 성도들은 우리 시대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는 것입니다.
특히 현재는 “성령이 모든 성도 각자의 심령 속에 내주하고 계신다.”는 사실에 깊이 주목하여야만 하는 것입니다(막1: 8; 눅12: 10; 요3: 5; 행2: 4; 9: 31; 롬8: 26; 고후1: 22; 살전4: 8; 5: 19; 딤후1: 14; 약4: 5; 요일3: 24; 4: 13; 계3: 13).
O.(막1: 8).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주지만 그분은 너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것이다.”
O.(눅12: 10).“누구든지 인자를 욕하는사람은 용서받겠지만 성령을 모독하는 말을 한 사람은 용서받지 못한다.
O.(요3: 5). 예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말한다.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우리가 의식하든 못하든 간에 “우리가 참으로 중생한 성도라고 한다면 성령은 그 누구에게나 죽기까지 함께 거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내 안에 성령이 거하시고 계신다 하니 그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성령이 지금 이순간도 내 심령 속에서 나의 인격에 깨달음과 감동을 주심으로 내가 예수를 주라 시인하고 믿고 감격하며 더욱 성숙된 신앙 인격으로 전진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이 내 안에 계심으로 하나님의 존재와 예수의 희생 사건은 그저 객관적인 한 사건이 아니라, “나를 위한 나의 사건”이 되는 것입니다.
성령이 내 안에 계심으로 나는 삼위 하나님을 이론으로만 아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만나고, 지금 이 순간도 교재를 나누는 것입니다. 내 안에 계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나는 모든 믿는 성도들로 구성된 교회 공동체의 일원”으로서의 영원한 천국에 동참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 안에 계시는 성령의 인도를 날마다 사모하면서 매일 매 순간 하나님의 실체와 교재를 나누며 더욱 성숙해 가는 기쁨을 누려야 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내주하심은 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내가 구원받음과 천국의 도래에 대한 산 증인인 것입니다. 또 성령의 내주하심으로서 성경의 모든 진리는 죽은 이론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살아있는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참 성도들은 자신 안의 성령과 살아있는 대화를 계속하는 자들 인 것입니다. 아멘.
+++오늘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와 보혈과 부활을 찬양합니다. 우리를 성령충만케 하셔서 그리스도 예수의 제자로 삼으시고 천국 복음을 온 세상 땅끝까지 전파하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입은 사람들에게 그리스도 예수의 은혜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성령이 충만하게 하시옵기를 그리스도 예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