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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설교

[3] 예수께서 풍랑을 잔잔케 하심 (8: 23-27)

by worldkor 2022. 12. 16.


[천국 복음과 영생의 말씀, 예수의 가르치심] (12월14일)
[마태복음8장, 참된 제자가 되는 길] 
+++기독교의 복음 신학과 새 번역 우리말 성경을 바르고 이해하기 쉽게 연구하는 신학모임입니다. 기독교와 성경, 천국 복음과 그리스도 예수를 왜곡하는 이단의 글과 동영상은 보고 읽는 사람의 마음과 정신을 혼미케 하여 가정과 사회를 병들게 하고 참된 신앙과 공동체를 멸망하게 하는 것입니다.+++

+++사 도 신 경+++ (표준 새 번역 외우기)+++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 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려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재와 죄를 용서 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주제] [3] 예수께서 풍랑을 잔잔케 하심 
[본문] 표준 새번역 우리말성경(8: 23-27) 
23. 그리고는 예수께서 배에 오르셨고 제자들도 뒤따랐습니다. 24. 갑자기 바다에 큰 폭풍이 일어 배 안으로 파도가 들이쳤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25. 제자들이 가서 예수를 깨우며 말했습니다. “주님, 살려 주십시오. 우리가 빠져 죽게 생겼습니다!” 26. 예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왜 그렇게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적은 사람들아!” 그리고는 일어나 바람과 파도를 꾸짖으셨습니다. 그러자 호수는 아주 잔잔해졌습니다. 27. 사람들은 놀라며 서로 수군거렸습니다. “도대체 저분이 누구시기에 바람과 파도까지도 저분께 복종하는가?” 

(마8: 1-17)에서는 예수님의 위대한 치유의 권능을 보여주셨습니다. 
이제 본문(마8: 23-27)에서는 흉흉한 갈릴리 바다의 파도를 잔잔하게 하신 예수의 초자연적 권능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특히 본문에는 불신으로 말미암아 두려움에 떠는 제자들의 당황하는 모습과 예수의 태평스럽게 주무시는 모습이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갈릴리 바다는 갑작스럽게 휘몰아치는 돌풍이 많기로 유명한 곳입니다. 
갈릴리 바다는 표면 온도가 갑자기 오르면 남동쪽의 고원으로부터 기압의 변화로 인한 거센 바람을 불러일으키게 됩니다. 이 바람은 갈릴리 바다의 거센 파도를 일으킵니다. 

우리는 제자들의 불신에 대하여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 그들은 예수께서 대속 사역을 감당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메시야라는 사실을 믿지 못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에 의해 보내심을 받은 메시야가 메시아로서의 사명을 완수하기도 전에 바다의 폭풍 속에서 죽을 수 없다는 사실을 제자들은 생각조차도 못했던 것입니다. 

둘째, 그들은 예수의 신적 권능에 대한 믿음이 부족하였던 것입니다.
그들의 이와 같은 불신은 주께서 폭풍을 잠재우고 나자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못하고 기이히 여기며 이와 같이 의문을 제기 한데서 잘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27절). 
O.27. 사람들은 놀라며 서로 수군거렸습니다. “도대체 저분이 누구시기에 바람과 파도까지도 저분께 복종하는가?” 

본문을 상고 함에 있어서 다음 세 가지 사항을 유의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1, 메시야적 권능의 증거입니다.
본문의 일차적 의의는 예수의 메시야적 권능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바다의 풍랑을 잔잔케하는 것은 하나님의 권능을 나타내는 중요한 증거로 묘사되고 있습니다.(욥38: 8- 11). 
O.(욥38: 8- 11). 8. 바닷물이 모태에서 빠져나오듯 쏟아져 나올 때 누가 문을 닫아서 그것을 막았느냐? 9. 그때 내가 구름을 바다의 옷으로 삼아 짙은 어둠으로 그것을 둘렀고 10. 내가 그것의 한계를 정해 그 문과 빗장을 세우고 11. ‘너는 이만큼까지만 오고 더는 나오지 말라. 네 도도한 물결이 여기서 멈출 것이다’ 하지 않았느냐?

예수께서 바로 창조주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또한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음을(요1: 3, 롬11: 36), 본문은 분명히 증거 하고 있습니다.

2, 제자들의 믿음 촉구입니다.
두 번째로 본문이 강조하는 바는 믿음의 중요성에 관한 것입니다
이러한 주제는(1- 17절)의 치유기사와 (18- 22절)에 묘사된바 제자 직에의 완전한 헌신의 문맥에서도 강조된 바가 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승선하였던 제자들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예수님의 엄청난 권능을 똑똑히 목격하였습니다. 그러나 막상 큰 환난이 닥치자 두려움과 불안 때문에 어쩔 줄을 몰라하였던 것입니다. 이것은 연약하기 이를 수 없는 체질을 가진 우리 인생의 적나라한 모습이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떤 역경에 처해도 흔들리지 않고, 예수님을 처음 영접할 때의 벅찬 감격을 계속 유지하여 온전히 주께 의탁함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진토임을 기억하사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께 무시로 기도하여야 하는 것입니다.(시103: 13, 14).
O.13. 아버지가 자식을 긍휼히 여김 같이 여호와께서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나니 14. 이는 그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단지 먼지뿐임을 기억하심이로다. 

3, 무서움은 믿음의 결핍에서 오는 불안입니다.
무서워하는 것은 인간이 지닌 본능적 감정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 무서운 인류 최초 범죄 이후에 생겨난(창3: 10) 부정적인 마음의 표상이라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다시 말함은 “무서운 인간이 하나님의 관계를 온전히 유지하지 못 할 때 생겨난 인간의 감정인 것입니다. 따라서 이 부정적인 감정을 극복하는 유일한 감정은 그 모습 그대로 하나님께 나아가 그분의 은혜에 의지하는 믿음인 것입니다. 

한편 본문에서는 무서워하는 감정과 믿음이 적은 것과의 긴밀한 상관관계를 보여주는 사건이 제시되었습니다.
즉 제자들은 풍랑중이였지만 만물보다 큰 우주의 주인이신 예수님과 함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을 전적으로 의뢰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두려운 감정의 노예가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진정 제자들에게 닥친 위기는 밖으로부터 풍랑이 아니라 마음속으로부터의 회오리치는 풍랑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대 우주(자연계)의 파도를 잠재우기 전에 먼저 소우주(제자들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격랑을 잠잠하게 하시었던 것입니다.
진정 인간에게 일어나는 절망과 두려움의 근본적인 해결법은 예수께 대한 온전한 믿음뿐입니다. 

오직 믿음의 배를 탄자 만이 어떤 폭풍우속에서도 길을 잃지 않고 어떤 뇌성 아래서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이와 같이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요16: 33; 행14:3; 딤전3: 13).
O.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O.3. 두 사도가 오래 있어 주를 힘입어 담대히 말하니 주께서 그들의 손으로 표적과 기사를 행하게 하여 주사 자기 은혜의 말씀을 증언하시니.
O.13. 집사의 직분을 잘한 자들은 아름다운 지위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에 큰 담력을 얻느니라. 아멘.

+++[오늘의 기도문, 마6: 9-13]+++(표준 새번역 외우기)+++
O. 9. 그러므로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10.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11.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12.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13.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영원토록 아버지께 있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