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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설교

예수그리스도를 따르는 자의 각오(8: 18-22) (2).

by worldkor 2022. 12. 13.

[천국 복음과 영생의 말씀, 예수의 가르치심] (12월13일)
[마태복음8장, 참된 제자가 되는 길] 
+++기독교의 복음 신학과 새 번역 우리말 성경을 바르고 이해하기 쉽게 연구하는 신학모임입니다. 기독교와 성경, 천국 복음과 그리스도 예수를 왜곡하는 이단의 글과 동영상은 보고 읽는 사람의 마음과 정신을 혼미케 하여 가정과 사회를 병들게 하고 참된 신앙과 공동체를 멸망하게 하는 것입니다.+++

+++사 도 신 경+++ (표준 새 번역 외우기)+++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 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려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재와 죄를 용서 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주제] [2] 예수그리스도를 따르는 자의 각오 (2).  
[본문] 표준 새번역 우리말 성경(8: 18-22) 

둘째, 머리 둘 곳이 없는 인자
O.20.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

순간적 감정으로서 선뜻 예수의 제자로 나서겠다는 한 서기관을 향해 예수께서는 당신의 메시아직의 본질이 그야말로 이 땅에서는 머리를 놓을 만하는 자신의 휴식조차도 얻지 못하는 희생과 고난의 길임을 말씀하심으로써 그의 요청을 완곡히 거부하시었던 것입니다. 

예수는 인간 구원이라는 영광된 사역을 수행 하려 오셨음에도 불구하고 뭇짐승들과 새들조차 가지고 있는 안식처를 갖지를 못하였습니다. 
정녕 예수는 탄생에서 부터(눅2: 7), 생애(막4: 38), 및 죽음에 이르기까지(마27: 35, 50), “머리 둘 곳”을 얻지 못하셨던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머리 둘 곳이 없는 자신의 처지”를 통해 
1, 당신께는 무엇에 관심을 집중하고 계신가(하나님의 나라와 인간 구원)를 그리고 그러한 관심이 모든 성도들의 관심이 되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을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2, 이땅의 보금자리보다 하늘의 안식처를 더 사모하도록 이끄셨던 것입니다, 
3, 이 세상의 자리에 만족함으로써 결단의 순간에 주저함이 발생하지 않기를 소원하는 뜻에서 이 말씀을 하시었던 것입니다. 
4, 예수의 제자가 되는 길은 오직 예수를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는 존재론적 결단으로서 단지 현상적 안락함의 선택이 아니라 역경과 고난의 선택임을 보이셨던 것을 예수께서는 이렇게 가리쳐 주셨습니다.
O.(눅14: 25-33). 25. 큰 무리가 예수와 함께 길을 가고 있었는데 예수께서 뒤돌아서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26. “누구든지 내게 오면서 자기 부모와 아내와 자식과 형제 혹은 자매와 자기 생명일지라도 나보다 더 사랑하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27.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지 않고 나를 따르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28. 너희 중 어떤 사람이 탑을 세우려 한다고 하자. 그러면 먼저 자리에 앉아 완공할 때까지 어느 정도 비용이 드는지 계산해 보지 않겠느냐? 29. 만약 기초만 잘 닦아 놓고 일을 마칠 수 없다면 보는 사람마다 비웃으며 30. 말할 것이다. ‘이 사람이 짓기를 시작만 하고 끝내지는 못했구나.’ 31. 또 어떤 왕이 다른 나라 왕과 전쟁하러 나간다고 하자. 그가 먼저 자리에 앉아 1만 명의 군사로 2만 명의 군사를 이끌고 오는 왕을 대항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지 않겠느냐? 32. 만약 승산이 없다면 그가 아직 멀리 있을 때 사신을 보내 화친을 청할 것이다. 33. 이와 같이 너희 가운데 누구든지 자기 소유를 다 포기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O.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이 말은 머리를 놓을 곳, 즉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고 그곳에서 휴식을 취할 만한 소유나 집조차도 없을 만큼 가난하고 피곤하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절대적 가난을 통해 예수께서는 온 인류에게 충만한 안식과 풍부한 부를 제공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를 사도 바울은 이렇게 설명을 하였습니다. 
O.(고후8: 8, 9). 8. 내가 명령으로 이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다른 사람들의 열성을 통해 여러분의 사랑의 진실성을 증명해 보이려는 것입니다. 9. 여러분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잘 알고 있듯이 그리스도께서는 부유하신 분으로서 여러분을 위해 가난하게 되셨습니다. 그분의 가난하심을 통해 여러분을 부유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여기서 예수는 특별히 당신의 권능에 압도된 두 사람에게 “고난과 헌신”의 뼈저린 결과를 상기시키셨습니다. 

“머리를 둘 곳 없다”는 이 말이 시사 하는 바 온갖 박해와 고독과 불편함은 오직 일류를 구원하시고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고자 하셨던 당신의 뜨거운 사랑으로써 많이 감당할 수 있었던 일인 것입니다. 

오늘 성공과 인기와 안락 지상주의에 깊이 물들어버린 우리에게도 바로 이 같은 사랑과 열정의 열병이 전념 되어야 할 것을 사도 바울은 이와 같이 설명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O.(갈6: 7-10). 7. 자기를 속이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결코 업신여김을 당하지 않으십니다. 사람이 무엇을 심든지 그대로 거둘 것입니다. 8. 자기 육체를 위해 심는 사람은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해 심는 사람은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둘 것입니다. 9. 선한 일을 하다가 낙심하지 맙시다. 포기하지 않으면 때가 이르면 거두게 될 것입니다. 10. 그러므로 기회가 닿는대로 모든 사람에게 선한 일을 하되 특히 믿음의 가족들에게 합시다.

셋째, “죽은 사람들에게 죽은 사람을 묻게 하고 너는 나를 따라라.”(22절). 
O.21. 다른 제자가 말했습니다. “주님, 제가 먼저 가서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게 해 주십시오.” 22. 그러나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죽은 사람들에게 죽은 사람을 묻게 하고 너는 나를 따라라.”

이를 잘 못 이해하게 되면 기독교란 부자 윤리조차 무시하는 불효막심한 반 도덕적인 종교란 비난을 면치를 못할 것입니다. 실로 이 말씀은 인륜과 도덕을 초월하여 계신 그리스도의 초월성을 이해한 다음 설명되어야 하는 말씀입니다. 더욱히 교리사적인 관점에서볼 때 인간의 죽음은 부활의 문틈에 들어서는 하나의 필연적 과정으로 이해되었기 때문에 죽음 이후의 장례 절차에 대해 큰의미를 두지 않았던 것이다. 

실로 예수께서는 인간적 윤리를 알지 못하거나 또는 무시해서 이처럼 비윤리적인 것처럼 보인 용어를 선택하신 것이 아님을 우리는 우선 선재하고 있어야하는 것입니다. 한편 “죽은 자란” 말의 의미를 살펴보면 그 뜻을 두 가지로 제시할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죽었다는 말을 1), 어떤 사물에 대한 무관심을 나타 내는 말로서 2), 그 사물이 우리에게 아무련 영향력을 미치지 못한 다는 것을 뜻으로 이해를 했던 것입니다. 따라서 세상에 대하여 죽었다. 율법에 대하여 죽었다. (롬7: 4). 죄에 대하여 죽었다(롬6: 110. 란 말은 세상이나 율법, 죄등이 우리에게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않는다는 뜻이 되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가 그런 것들에서부터 자유롭다는 것을 가르 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이 말를 사용하였던 것도 이와 같은 의미로 우선 이해하고 있어야하는 것입니다. 즉 “내일에 무관심한 자, 곧 영적인 사망자들, 그리고 죄안에 죽어있어 우리와 관계 없는 자들로 하여금(엡2: 1). 죽은 자들을 돌보게 하라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죽어버린 자들이 육적인 죽음을 맞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그리하여 세상적 근심에서 자유한 상태로 복음 선교에 참여하여야한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이 제자의 우유부단한 면을 간파하시고 하나님 나라의 일을 생각하는 것이 다른 무엇보다도 우선되어야 함을 가르치기위해 이 말씀을 하셨던 것입니다. 한편 예수께서는 이러한 믹락에서 “아비나 어미를... “아들이나 딸을... “나 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마10: 37). 라고 재차 가르치신 바가 있습니다. 죽은 자들을 보는 것이 좋으나냐?. 예수를 따르는 것이 이보다 더 좋은 것인가?..
+++[오늘의 기도문, 마6: 9-13]+++(표준 새번역 외우기)+++
O. 9. 그러므로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10.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11.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12.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13.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영원토록 아버지께 있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