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 복음과 영생의 말씀] (12월1일)
+++기독교의 복음 신학과 [새 번역 우리말성경]을 바르고 이해하기 쉽게 연구하는 신학연구모임입니다. 기독교와 성경 천국 복음과 그리스도 예수를 왜곡하는 이단의 글과 동영상은 보고 읽는 사람들의 마음과 정신을 혼미케하여 개인과 가정과 사회공동체를 병들게 하고 망하게 하는 악의 세렦입니다+++
[기독교의 참된 제자가 되는 길]
+++ 사 도 신 경 +++ (표준 새번역) +++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려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재와 죄를 용서 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예수의 가르치심, 마태복음7장 산상수훈]
[주제], [2]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과(마7: 13-14). (1).
[본문], 새 번역 우리말 성경(7: 13-14)
O.13.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은 넓어 그곳으로 들어가는 사람이 많다. 14. 그러나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그 길은 험해 그곳을 찾는 사람은 적다.
첫째, 이웃에 대한 행위의 규범
마태복음 7장은 마태복음 안에 있는 첫 번째 설교, 산상수훈(5: 1- 7: 29)이 끝나는 예수의 가르침의 5개 설교 중 끝나는 부분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특히 여러 개의 황금률(7, 12절)이 있는 것으로 유명한 이 7장은 다시 “이웃에 대한 행위의 규범”이 나오고 있는 부분(1-12절)과 산상수훈(the Sermon on the Mount)으로 지칭되는 첫 설교의 결론 부분(13-29절)등 크게 둘로 나눠 저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黃金律”(the golden rule, “마7: 12. 그러므로 모든 일에 네가 대접을 받고 싶은 만큼 남을 대접하여라. 이것이 바로 율법과 예언서에서 말하는 것이다.” ).
5장에서 시작된 위대한 산상수훈은 본장(7장)에 와서 대단원을 내리게 됩니다. 본장은 앞장과 별다른 연관을 맺지 않는 것 같이 보이지만 실제로 본장은 앞장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는 것입니다.
본장은 산상수훈 전체에서 차지하는 위치도 막중한 것입니다.
본장에서는 천국 시민생활의 구체적인 측면, 비판의 원리, 기도에 관한 교훈등을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본 장의 전체가 여러 가지 결론의 위치를 담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천국 시민이란 단순히 복음을 듣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것을 행하는 자라야 하는 것입니다.
먼저 (7; 1-12)은 “이웃에 대한 행위의 규범”이라 할 수 있습니다,
1. “너희가 심판받지 않으려거든 심판하지 말라. 2. 너희가 심판하는 그 심판으로 심판을 받을 것이며 너희가 저울질하는 그 저울질로 너희가 저울질당할 것이다. 3. 어째서 너는 네 형제의 눈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4. 네 눈에 아직 들보가 있는데 어떻게 형제에게‘네 눈에 있는 티를 빼 주겠다’라고 할 수 있느냐? 5. 이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런 후에야 네가 정확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낼 수 있을 것이다. 6.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고 너희 진주를 돼지에게 던지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그것들이 발로 그것을 짓밟고 뒤돌아서서 너희를 물어뜯을지 모른다. 7.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으라. 그러면 너희가 찾을 것이다.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문이 열릴 것이다. 8. 구하는 사람마다 받을 것이며 찾는 사람이 찾을 것이며 두드리는 사람에게 문이 열릴 것이다. 9. 너희 가운데 자녀가 빵을 달라고 하는데 돌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10. 자녀가 생선을 달라고 하는데 뱀을 주겠느냐? 11. 너희가 악할지라도 자녀에게는 좋은 것을 줄 줄 아는데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사람에게 좋은 것을 주시지 않겠느냐? 12. 그러므로 모든 일에 네가 대접받고 싶은 만큼 남을 대접하여라. 이것이 바로 율법과 예언서에서 말하는 것이다.
이 이웃은 신자와 불신자를 포함한 주변 사람들을 지칭하는 것입니다.
대 계명으로서 좌우로 치우치지 않는 결론을 도출해 내고 있는 것입니다.
둘째, (마7: 13절, 14절은?..)
O.13.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14.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6: 1-18)에서는 “그리스도인의 경건 생활에 대한 지침”입니다,
(6: 19-34)에는 “그리스도인의 일반생활에 대한 지침”이 수록되었습니다.
(7: 1-12)은 6장 전체 내용을 요약함과 결론을 내린 부분이라 합니다.
이러한 원칙들을 실제의 삶속에서 실천해 나감에 있어 주의해야 할 사항들입니다, 이와 같은 “이웃 사랑(12절)”입니다.
O.12.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O.13.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14.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이 말씀은 (마5: 3- 마7: 12) 산상수훈 전체의 결론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이 세상에서 맡은 바 사명을 감당하는 것은 곧 “좁은 문”이라고 한 마디로 요약을 할 수 있습니다.
(마7: 13, 14)은 산상수훈(마5: 3- 7: 12) 전체의 내용의 결론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이 세상에서 맡은 바 사명을 감당하는 것은 곧 “좁은 문”이라는 한 마디로 요약하기 때문입니다.
(15- 27절)은 산상수훈 전체의 구조상 산상수훈의 결론입니다.
종말론적 심판의 필연성에 근거하여 예수께서 명령하신 원리들과 교훈들을 철저히, 그리고 끝까지 실천해 나가도록 당부하는 내용입니다.
(마5: 1- 7: 13-27)의 산상수훈에는 네 가지 경고로서 끝을 맺습니다.
이는 각각 한 쌍씩의 대조를 이루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 두길(13- 14절), 2), 두 종류의 나무(15- 20절), 3), 두 주장(21, 23절), 4), 두 건축자(24- 27절)들입니다.
이들은 모두는 종말론적 심판으로 이야기의 방향을 집중하고 있는 것입니다.
셋째. 이중(13- 14절), “좁은 문과 좁은 길”,
이는 마태복음(5: 3- 7: 12)에 해당하는 전체 내용의 결론의 성격을 띠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거기에서 제시된 그리스도인다운 삶의 특성을 규명하는 차원에서, 또 그 삶의 원리를 구체적인 삶속에서 적용토록 하는 행동의 요청이라는 차원에서 (13- 14절)이 결론적 성격을 띠고 있는 것입니다.
한편 본문은 참 신앙인에게는 세상에서의 영육간의 고난이 필연적으로 있을 수밖에 없음을 가르쳐주고 있는 것입니다. 덧 부처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 그 고난을 감수해야 한다는 사실을 곁들이고 있습니다. 실로 나그네(순례자)로 살아가는 성도의 참된 휴식은 오직 천국에서만 가능합니다.
따라서 성도님들은 고난과 역경으로 이어진 이 세상을 살면서 마음의 눈을 아래가 아니라 위로, 뒤가 아니라 앞으로 두고 점진적 삶을 살아 가야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에게 있어서 안일한 타협이나 임기웅변식의 처세술은 결국 우리를 넓은 멸망의 문, 멸망의 길로 이끌어 가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그리스도인다운 삶의 특성을 좁은 문과 좁은 길에 비유함으로써 산상수훈을 접하는 성도들에게 선명한 이미지를 남기셨던 것입니다.
O.13.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14.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본문을 읽으면서 우리는 두 개의 문과 두 갈래의 길을 머릿속에 떠오르게 됩니다. 먼저 이 “좁은 문”에 대하여 상고해 보면 이 좁은 문은 “그리스도인의 삶이 그 시작부터 좁고 협착하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고 있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넓었다가 점점 좁아지거나, 그 반대로 처음에는 좁았다가 점점 넓어지는 것이 아니라 “시종일관 좁고 협착한 삶이 바로 성도들의 삶인 것이라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지나치게 교리적이고 형식적인 신앙의 혐오를 느낀 나머지 세상적 지혜와 육신적 동기를 교회 내에 끌어들여 기독교를 매력적이요 자극적인 어떤 것으로 간주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대의 기독교가 성경의 근본을 훼손해 가면서 이렇게 잘못되어 가고 있는 현실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복음은 그 자체가 좁은 문으로부터 시작됨을 본문은 공공연하게 그리고 비타협적으로 선언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한편 이 문은 너무도 좁기 때문에 이문을 통과하기 위해 우리가 포기하지 않으면 않되 는 것들이 있습니다.
+++ 오늘의 기도 +++ (주기도문, (표준 새번역, 마6: 9-13) +++
9. 그러므로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10.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11.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12.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13.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영원토록 아버지께 있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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