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 복음과 영생의 말씀] (12월2일)
+++기독교의 복음 신학과 [새 번역 우리말 성경]을 바르고 이해하기 쉽게 연구하는 신학모임입니다. 기독교와 성경 천국 복음과 그리스도 예수를 왜곡하는 이단의 글과 동영상은 보고 읽는 사람들의 마음과 정신을 혼미하게 하여 가정과 사회를 병들게 하고 참된 신앙의 공동체를 망하게 합니다.+++
[기독교의 참된 제자가 되는 길]
+++ 사 도 신 경 +++ (표준 새 번역) +++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려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재와 죄를 용서 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예수의 가르치심, 마태복음7장 산상수훈]
[주제], [2]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마7: 13-14). (2).
[본문], [새 번역 우리말 성경(7: 13-14)]
O.13.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은 넓어 그곳으로 들어가는 사람이 많다. 14. 그러나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그 길은 험해 그곳을 찾는 사람은 적다.
예수께서는 그리스도인다운 삶의 특성을 좁은 문과 좁은 길에 비유함으로써 산상수훈을 접하는 성도들에게 선명한 이미지를 남기셨던 것입니다.
본문을 읽으면서 우리는 두 개의 문과 두 갈래의 길을 떠오르게 됩니다.
먼저 이 “좁은 문”에 대하여 상고해 보면 이 좁은 문은 “그리스도인의 삶이 그 시작부터 좁고 협착하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고 있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넓었다가 점점 좁아지거나, 그 반대로 처음에는 좁았다가 점점 넓어지는 것이 아니라 “시종일관 좁고 협착한 삶이 바로 성도들의 삶인 것이라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지나치게 교리적이고 형식적인 신앙의 혐오를 느낀 나머지 세상적 지혜와 육신적 동기를 교회 내에 끌어들여 기독교를 매력적이요 자극적인 것으로 간주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대의 기독교가 성경의 근본을 훼손해 가면서 이렇게 잘못되어 가고 있는 현실이 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복음은 그 자체가 좁은 문으로부터 시작됨을 본문은 공공연하게 선언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문은 너무도 좁기 때문에 이문을 통과하기 위해 우리가 포기하지 않으면 않되 는 것들이 있습니다.
첫째, 우리는 세속주의를 뒤로 남겨두어야 이문을 통과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의 전통과 관습에는 세속주의적 요소가 가득합니다.
우리는 그러한 기성화 된 것 들에게 동화되기 십상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타락된 풍조에 휩쓸려 갈 것이 아닙니다.
인기도 없고 초라해 보일지라도 “성경말씀에 입각한 단언을 내려야합니다.”
둘째, 배제되어야 할 것은 바로 자아(自我)입니다.
자아란 곧 옛사람의 타락한 성품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타락한 아담의 후예인 모든 자연인 들이라고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씀을 하시었습니다.
O.(엡2: 3).“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라.”
바울이 말함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인 까닭에 자력으로써 그리스도의 뒤를 따르고자 하는 행위는 가시나무에서 포도 열매를 따려는 것 과도 같은 헛된 노력일 뿐인 것입니다.
결국 그리스도를 따르는 길은 자기를 부인하고 오직 자신안에 살아 역사하시는 그리스도께서 더욱 충만하게 나타나시도록 할 때만 가능하다고 바울은 이렇게 말씀 하였습니다.
O.(갈2: 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3], 좁은 문과 좁은 길,(13-14절).
O.13.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은 넓어 그곳으로 들어가는 사람이 많다. 14. 그러나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그 길은 험해 그곳을 찾는 사람은 적다.
한편 예수의 말씀을 좇아 사는 자들 앞에는 좁은 “문” 뿐만 아니라, 좁은 “길” 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단 한 번의 비장한 각오와 결단으로써 “좁은 문”을 통과하기만 하면 그것으로 모두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은 시작일 다름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생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수준까지 이르기 위하여 바울은 이렇게 말씀을 하였습니다.
O.(엡4: 13). 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14.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적하기 위하여서는 끝까지 매진하여야 하는 것이 라고 바울은 이와 같이 말씀을 하였습니다.
O.(엡6: 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그리스도인의 삶이 좁고 협착한 길에 비유된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이렇듯 어렵고 힘든 삶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것은 세상이 진리를 좇는 자를 항상 핍박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런 까닭에 바울은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 라고 이와 같이 말씀을 하였습니다.
O.(딤후3: 12).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그러나 이토록 힘든 길이 앞에 놓여 있다고 하여 지래겁을 내어 주저앉아 버리거나 돌아설 필요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현재 감당하는 수고나 고난과는 족히 비교 할 수조차 없는 엄청난 축복과 영광이 좁은 길의 목표지점에서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은 이 길을 혼자 걸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와 앞서가신 발자취를 따라 그분으로부터 공급되는 힘으로 그분과 함께 나아가기 때문입니다.
한때 주님의 은혜에 감격한 나머지 자신의 전부를 주께 헌신하기로 하고 좁은 문을 들어섰던 자들이 혼자서 악전고투하다가 끝내 중도에서 주저앉게 되고 마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 가?...
예컨대 성도는 비용을 계산해 보지도 않고 무작정 망대를 건축하려는 사람, 혹은 적군의 수효를 헤아려 보지도 않고 싸우려 나 가는 임금들처럼 무도하게 덤벼들 것이 아닙니다. 이를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었습니다.
O.(눅14: 28-32). 27.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28. 너희 중의 누가 망대를 세우고자 할진대 자기의 가진 것이 준공하기까지에 족할는지 먼저 앉아 그 비용을 계산하지 아니하겠느냐 29. 그렇게 아니하여 그 기초만 쌓고 능히 이루지 못하면 보는 자가 다 비웃어 30. 이르되 이 사람이 공사를 시작하고 능히 이루지 못하였다 하리라 31. 또 어떤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우러 갈 때에 먼저 앉아 일만 명으로써 저 이만 명을 거느리고 오는 자를 대적할 수 있을까 헤아리지 아니하겠느냐 32. 만일 못할 터이면 그가 아직 멀리 있을 때에 사신을 보내어 화친을 청할지니라.
그리스도인의 삶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를 미리 깨닫고 모든 어려움을 능히 극복할 수 있도록 날마다 그리스도의 도우심을 힘입어야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철두철미하게 무장해야 하겠다고 바울은 이렇게 말씀을 하였습니다.
O.(엡6: 13- 17). 13.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14.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15.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16.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17.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아 멘.
+++ (주기도문, (표준 새번역, 마6: 9-13) +++
9. 그러므로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10.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11.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12.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13.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영원토록 아버지께 있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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